2009年1月10日土曜日

[機械翻訳] 京都雜志、東國歲時記

경도잡지 [京都雜志]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 1749~1807)이 지은 당시 서울의 세시풍속지.
2 권 1책. 필사본. 완성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내용으로 보아 정조 때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은 풍속에 대해 기술한 제1권에서는 당시의 여러 문물제도를 건복(巾服)·주식(酒食)·다연(茶烟)·과과(果瓜)·제택(第宅)·마려(馬驢)·기집(器什)·문방(文房)·화훼(花卉)·발합()· 유상(遊賞)·성기(聲妓)·도희(賭戱)·시포(市鋪)·시문(詩文)·서화(書畵)·혼의(婚議)·유가(遊街)·가도(呵導) 등 19항목으로 나누어 당시에 관행되던 문물제도의 실상을 서술하면서 그 유래나 비판을 약간씩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주로 양반 사대부의 생활문화에 집중되어 있고, 일반 백성의 생활상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2권에서는 당시 한양의 세시를 원일(元日), 해일(亥日), 자일(子日), 사일(巳日), 인일(人日), 입춘(立春), 상원(上元), 2월 초일일, 한식(寒食), 중삼(重三), 4월 초파일, 단오(端午), 6월 15일, 복(伏), 중원(中元), 중추(中秋), 중구(重九), 10월 오일(午日), 동지(冬至), 납평(臘平), 제석(除夕) 등 19항목으로 나누어 많은 문헌을 인용하여 고증하고, 그 연원과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속의 뿌리를 지나치게 중국에 결부시키고 있다. 기록이 드문 조선시대의 풍속과 세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로서, 같은 세시기인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와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보다 먼저 집필되었고, 특히 〈동국세시기〉의 모태가 되었다. 우리나라 민속학연구에 귀중한 문헌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12189&v=44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조선 후기의 학자인 홍석모(洪錫謨 : ?~?)가 우리나라 연중행사와 풍속 등을 정리하여 설명한 세시풍속지.
1 책. 필사본. 책 맨 앞의 이자유(李子有)의 서문이 1849년(헌종 15) 9월 13일에 씌어진 것으로 보아 1849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책에서는 정월부터 12월까지 1년간의 행사·풍속을 23항목(광문회본은 22항목)으로 분류하여 월별로 정연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월에는 문안비(問安婢)·세함(歲銜)·떡국 등 여러 가지 새해행사를 열거하고 있는데, 설빔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는 등 순수한 우리말을 구태여 한자어로 고쳐 쓰려 한 흔적이 보인다. 각 지방의 풍속으로는 양서(兩西)의 용의 알 뜨기, 충청도의 횃불싸움, 관동지방의 새 쫓기, 영남의 칡줄다리기 등이 소개되어 있고, 특히 제주도의 풍습은 본토와 다른 것이 많아 많은 기사가 실려 있다. 또한 각 시기마다의 별식인 시식(時食)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종래 민속을 해설한 책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세밀하며, 당시 이미 없어진 민속도 〈동국여지승람〉에서 전제하여 실어놓았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차이가 있는 풍속들도 많이 기술되어 있는 자료집으로서, 우리나라 세시풍속 연구의 중요한 기본문헌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나라 세시풍속의 시원과 유래를 억지로 중국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시대적 한계성이다.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127566

https://qir.kyushu-u.ac.jp/dspace/bitstream/2324/5409/1/slc007p063.pdf

「煖爐會」の記述(東國歳時記、洌陽歲時記、京都雜志) 

「海衣裹」の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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